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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소설처럼

중2병에 대한 J의 분석

봄기운이 시시각각 손짓하며 유혹하는 4. J는 카톡을 들여다보며 허탈하게 앉아 있었다. 한 학생이 ‘steady’라는 단어로 만들어 왔던 문장을 떠올렸다.

 

Being steady is the most important thing whatever we do.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꾸준한 것은 가장 중요하다.

 

1 J에게 와서 폭풍 성장을 한 고3 H가 만든 문장이었다. H는 자신이 만든 문장처럼 2년 반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아파서 딱 두 번 수업을 빠졌다. 아픈 건 불가항력적이니 괜찮다.

 

카톡을 보낸 주인공 L은 올해 중2가 되었다. 1 J에게 왔는데 L 또한 꾸준히 하는 것이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영어 수업을 꾸준히 한 번씩 빠졌다. 늘 여러 가지 이유가 따라붙었다. J는 직감했다. L은 영어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것을. 어차피 공부가 재미있어서 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으니까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라도 꾸준히 배우길 J는 바랐다.

 

수업을 빠지거나 숙제를 해 오지 않는 아이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 변명했다. 이번에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배드민턴 방과 후 수업을 해야 해서 못 온다고 했다. L은 불과 며칠 전에 영어 원서 읽기동아리에 들었다며 J에게 영어책을 빌려 달라고 했다. J는 드디어 L도 영어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며 흥분해서 말이 빨라졌다. 자신이 읽었던 온갖 책을 꺼내와 앞에 늘어놓고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함께 상의했다. L을 바라보는 J의 눈빛이 뿌듯했다. 수업을 마치고 보낼 때 J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영어 원서 읽기 동아리에 들었어?”

가위바위보에서 졌어요. 원래는 배드민턴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J는 눈을 껌뻑거리며 ..’ 했다. 그래도 L이 지금까지 한 말 중에 제일 길었다는 것에서 희망을 보았다. 앞으로 L은 더 나아질 거라고.

 

L은 축구를 좋아했고 늘 음악을 듣느라 한쪽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왔다. 키는 컸지만 퍽 마른 체구였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1년 반이 되어가는 동안 JL이 웃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대화는 꿈같은 일이었고 묻는 말과 수업 설명에 대해서는 단답형으로 답했다. . 아니요. 아주 가끔은 라는 말을 아주 짧고 희미하게 해서 J의 귀에는 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날 학생 S가 친구가 카톡에 중2병 같은 말을 남겼다고 했다.

 

그래? 어떤 말인데?”

 

S는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친구의 비밀을 지켜 줘야 해요. 말할 수 없어요.”

 

S는 중2병을 절대 하지 않을 거라 했다. 1S에게 중2병은 무서운 것인 게 틀림없다. 너도 중2병이야, 라고 물으면 조금은 볼멘소리가 돌아왔다. 아니에요! 단호한 목소리였다.

 

J는 자신이 중2였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이상하게도 중1 때와 중3 때는 또렷하게 기억나는 일이 많았는데 중2 시절 추억은 흐릿했다.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고 하니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J는 생각했다.

 

S는 초등학교 2학년 때 J에게 왔고 이미 초등학교 3학년 때 사춘기 증상 비스름한 것을 겪었다. 시종일관 입을 꽉 다문 채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J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으며 자주 졸았고 자주 수업을 빠졌다. J는 그때를 회상하며 잠시 온몸을 떨었다. 제발 다시 그런 시기를 거치지 않기를 바랐다. 한편으로는 그런 시기를 지나 지금은 자주 웃고 너스레가 늘어 J가 하는 말끝마다 한 마디씩 했다. 다행히 반항적인 말이 아니라 나름 자신의 의견이었다.

 

올해 고3이 된 B가 왔다. 수능특강으로 공부를 하다가 목마르다며 물을 청했다. 물을 가져다주고 J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근데 너도 중2병 겪었어?”

그럼요. 저는 아직도 중2병이에요.”

그게 뭔데?”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거요.”

? 그게 중2병이야? , 산다는 건 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뭐 이런 철학적이고 심오한 질문을 던지고 그걸 핑계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기피하고 뭐 그런 게 아니고?”

그건 사춘기죠.”

??”

 

그날 저녁 J는 중2병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2병은 사춘기 증상 비슷한 것을 초등학교 때 겪은 중1이 다시 거쳐 가기를 무서워함.

2병은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이 듦.

2병의 특징은 말수가 줄어들고 웃는 법을 잊은 듯 표정이 일관되게 무표정함.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믿고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을 밀쳐둠. 꾸준히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함. 언제 오는지 일정하지 않지만, 언제든 누구에게나 올 수 있음.

 

다음 날 J는 산에 산책하러 나갔다. 새싹이 돋고 나무에 초록 잎들이 살아났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예쁘다. 예뻐.”

 

한 남학생이 우연히 J 옆을 지나쳐 갔다. 밝은 얼굴에 웃음을 띤 아이의 얼굴이 봄이 피어난 산과 잘 어우러졌다.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며 지나가서 J는 의도치 않게 두 사람의 통화를 잠시 들었다. 두 아이의 말투가 특이했다. 뭐뭐임으로 끝내고 있었다.

 

나도 가고 싶지만 할 일이 많음.”

여기 너무 좋음.”

티브이를 보고 싶지만 공부해야 함.”

태호가 그렇게 말하면 귀여움.”

 

대충 이런 식의 말투였다. 딱 봐도 중학생인데 L과는 너무도 달랐다. 멀어져 가는 그 아이 뒤에서 걸으며 J는 중2병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중학생도 귀여울 수 있음. 2병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음. 아이마다 다름. 그리고 다른 것처럼 다 지나갈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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