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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소설처럼

또 야? 또 네! 또 하자!

 

1인칭 독자 시점 글쓰기 공모전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발표 전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이 왔다. 저장이 되지 않은 번호는 안 받는 걸 원칙으로 하므로 받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이라 엄마 집에 모여서 언니들과 주꾸미 요리를 해 먹었다. 주꾸미가 제철이라 부들부들 연하고 맛났다.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저녁을 잘 먹고 설거지까지 완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괜스레 후회가 밀려왔다.

 

전화를 받을걸. 혹시라도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다고 연락이 온 거면 어쩌지.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행복한 상상을 했다. 벚꽃 나무에 피어난 연한 분홍빛 꽃잎이 밤과 어우러져 하늘하늘 화사했다. 눈도 마음도 즐겁게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종일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렸지만 허탕이었다.

 

또 야? 또 네! 또 하자!

 

사람은 본래 자기애가 있기 마련인지라 내가 만들어 낸 이야기들이 그냥 묻히는 게 안타까웠다. 다시 읽어 보면 쑥스럽기도 하고 전문가의 선택을 받지 못했음은 좋은 글이 아니라는 추측도 해 본다.

 

그래도 그냥 컴퓨터에 처박아 두어 그 존재를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티스토리에 ‘줄리의 스토리방’을 만들고 차곡차곡 내가 만들어 낸 이야기를 저장하기로 했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타인이 읽어주고 공감을 해 준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경험으로 안다. 대중의 관심과 공감을 받기란 수없이 많은 우주의 행성에서 우리가 숨을 쉬고 물을 마시며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지구를 찾을 확률만큼 어렵다는 것을.

 

작년에 네이버 웹 소설 공모전에 도전했다. 그때 많은 걸 깨달았다. 나의 감성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기술이 타인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는 건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동시에 나의 이야기를 기다려주고 읽어주는 소수도 존재한다는 것을.

 

어제 나의 학생이 왔을 때 티스토리에 나의 블로그를 만든 일과 공모전에서 또 미끄러진 이야기를 잠시 공유했다. 올해 중3이 된 학생은 예쁘게 방긋 웃으며 나를 응원해주었다.

 

“그래도 계속 도전해 봐야죠.”

 

맞다. 계속 도전해 보는 거다.

 

내가 생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무참히 휩쓸기 전 해였다. 도서관에서 책 모임에 가입했다가 글 벗을 만났다. 그녀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만나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시발점이 되었다. 그 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한데 2년 정도 되어 간다. 그동안 백일장 두 번, 크고 작은 공모전을 일곱 번 도전했다. 그녀는 이사하였고 우리는 더는 만나서 즐겁게 글을 쓰고 진지하게 서로의 글을 읽는 일을 하지 못한다. 마음만은 늘 함께해서 카톡으로 연락을 하고 아주 가끔 쓴 글을 공유한다.

 

이제는 나 혼자라도 글을 쓰고 올릴 공간이 필요했다. 우리 학생들에게 다짐한 대로 그냥 쭉 쓰려고 한다.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나의 글도 변해서 어딘가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지 또 누가 알겠는가.

 

No body knows what will happen.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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