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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소설처럼

아재 개그를 쓰면 망해요

J는 아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재 개그를 들으면 빵빵 터진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 정도다.

 

며칠 전 산을 산책할 때였다 (J는 코로나 때문에 작년부터 헬스클럽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목디스크라고 진단받았고 매일 산에 간다). 철봉에 매달려서 온몸을 쭉 늘어뜨리기를 여러 번 하고 어르신들 틈에 끼여 다리 마사지를 했다.

 

그때 유치원생들이 올망졸망 줄을 서서 재잘거리며 걸어왔다. 선생님이 뒤처진 아이들을 기다리자고 했고 아이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섰다.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장난기와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맞은편에 서 있던 할아버지 두 분이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들 몇 살이니?”

 

맨 앞에 서 있던 아이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쭉 펴고 대답했다.

 

“일곱 살이요. 여기 있는 애들 전부 일곱 살이에요.”

 

J는 다리 마사지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걷기 위해 맞은편 산으로 가기로 했다. 방금 말 한 아이와 두 할아버지를 지나칠 때 J의 귀가 활짝 열렸다.

 

“넌 일곱 살이야? 나는 좁쌀이고 저기 운동하는 저 할아버지는 멥쌀이야.”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지나치던 J의 입에서만 꼼지락대던 웃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흐흐흐흐흐흐흐

 

J는 그날 있었던 일을 자주 아이들과 공유했다. 그리고 아이들 학교생활은 어떤지 자주 물었다. 그날 들은 아재 개그를 공유했을 때 S의 반응은 이랬다.

 

아....

 

끝을 맺지 못하는 단 한 마디. 아...... J만 여전히 신나게 웃었다.

 

“쌤, 그렇게 재미있어요?”

“응. 재미없어?”

“전혀요.”

“지금 쓰는 소설에도 아재 개그를 좀 썼는데 어떨까?”

“쌤, 아재 개그 쓰면 망해요.”

 

J는 S의 조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재 개그를 하거나 들은 이야기를 공유할 때 뜨악한 여학생들의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누구는 J의 얼굴을 잠시 외면하기도 했다. 창피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부 남학생들은 곧잘 아재 개그를 시도한다. J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경쾌한 소리, ‘하하하하하하’가 신기한 게 틀림없다. 어쩌면 얼마나 웃을 수 있는지 실험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S처럼 자주 J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

 

쌤, 유튜브를 해 봐요. 쌤, 자극적인 이야기를 써야 해요. 살인 이야기나 무서운 이야기 같은 거요. 아니면 막장 드라마 같은 거요. 그래야 사람이 많이 봐요.

 

그리고 현실을 깨우쳐주려고 되묻기도 한다.

 

네? 아직도 글을 써요?

 

취미로 쓰다가 말려니 했나 보다. J는 지금 쓰는 장편 소설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J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현 미디어가 묘사하는 요즘 십 대들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J의 눈에 비치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래도 아이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어쩌면 J는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조각 중 하나만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어 공부를 할 때의 모습만.

J는 그냥 자신만의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아재 개그를 쓰면 망한다고 하니까 쓰지 않는 거로.

그래도...그건 좀...

그러면 아주 조금만 쓰는 거로.
어차피 잘하는 게 아니니까.

대신 들어서 재미있으면 맘껏 웃는 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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