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편 소설/동굴로 들어간 재수생

동굴로 들어간 재수생 2 그때 풍선 위가 열린다. 산들바람에 내 긴 머리칼이 위로 향해 날린다. 공기가 내 머리칼을 잡고 나를 위로 쭉 당겨준다. 나는 가볍게 떠올라 풍선 밖으로 날아오른다. 둥둥 떠 있는 나는 깃털처럼 가볍다. 큰 바윗덩이처럼 뭉쳐져 있던 근심과 불안감이 땅 아래로 후드득 떨어진다. 그제야 내 마음에 공간이 생기고 기쁨과 흥이 흘러들어온다. 행복이 뭔지 기억이 되살아난다. 바람이 ‘후’하고 부드럽게 나를 성 쪽으로 밀어준다. 성 옆에 떠 있던 나무가 다리처럼 성 앞에 놓인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나무 위를 걸어 성으로 다가가 육중한 문을 힘껏 밀어 본다.. 꿈적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문이 아주 조금 삑 하고 열린다. 나는 서둘러 내 몸을 쏙 밀어 넣는다. 성 내부는 고풍스럽고 밝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가.. 더보기
동굴로 들어간 재수생 1 동굴을 만들었다. 습하고 어둡고 은밀하게. 처음에는 내가 쉴 수 있는 나만의 장소가 필요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꿈도 공부도 포기하고 싶었다. 오래도록 그냥 주저앉아 웅크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시간이 무료해서 긴 동굴을 따라 걸어봤다. 어둠을 뚫고 벽을 더듬어 도달한 동굴 끝은 다른 세계로 이어져 있었다. 겁먹은 진짜 나는 동굴로 들어간다. 남겨진 가짜 나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현실에서 살아내야 하는 삶을 산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재수생이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싶다. 활짝 펼친 그 날개가 매번 공부에서 꺾인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나에게 공부가 왜 이다지도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나는 매사에 죽을 둥 살 둥 공부를 해대며 미친 듯이 살지 않아도 내가 숨 쉴 수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