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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동굴로 들어간 재수생

동굴로 들어간 재수생 2

그때 풍선 위가 열린다. 산들바람에 내 긴 머리칼이 위로 향해 날린다. 공기가 내 머리칼을 잡고 나를 위로 쭉 당겨준다. 나는 가볍게 떠올라 풍선 밖으로 날아오른다. 둥둥 떠 있는 나는 깃털처럼 가볍다. 큰 바윗덩이처럼 뭉쳐져 있던 근심과 불안감이 땅 아래로 후드득 떨어진다. 그제야 내 마음에 공간이 생기고 기쁨과 흥이 흘러들어온다. 행복이 뭔지 기억이 되살아난다.

 

바람이 하고 부드럽게 나를 성 쪽으로 밀어준다. 성 옆에 떠 있던 나무가 다리처럼 성 앞에 놓인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나무 위를 걸어 성으로 다가가 육중한 문을 힘껏 밀어 본다.. 꿈적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문이 아주 조금 삑 하고 열린다. 나는 서둘러 내 몸을 쏙 밀어 넣는다.

 

성 내부는 고풍스럽고 밝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가 매혹적이다. ‘리앤 라 하바스가 부르는 ‘스타리‘ 스타리 나이트가 흘러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노래가 시작되자 맞은편 하얀색 벽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조금씩 하얀 벽을 채워 나간다. 고흐가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요양원에 갇혀 쇠창살 너머로 본 밤 풍경을 담은 이 그림이 나는 유독 마음에 든다. 고흐의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서.

 

성 중앙에 이젤이 놓여 있고 하얀 캔버스가 그 위에 놓여 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서 앉는다. 동굴을 통해서 만난 나의 별이 빛나는 밤을 상상해 본다. 나의 밤하늘은 순백색이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검다. 하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하늘보다 더 하얗다.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노래가 지직 소리를 내며 간간이 끊긴다. 샹들리에가 흔들린다. 벽에 아름답게 전시되어있던 그림이 조금씩 사라진다. 음악 소리에 맞춰서 바삐 움직이던 내 손이 멈칫한다. 내 얼굴에 불안이 퍼진다. 다른 감정은 일제히 사라진다.

 

똑똑똑. 거친 주먹이 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벌컥. 엄마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 너 다음 달이 수능인데 이 성적으로 또 어쩔 거야?

 

겨우 매달려 있던 샹들리에가 떨어져서 박살이 난다.

 

- 너 공부는 하는 거야?

 

음악이 뚝 끊긴다.

 

하고 싶은 말이 내 입에서 맴돌다 목을 타고 자꾸만 꼴깍 넘어간다.

 

- 재수하는데 어째서 영어는 작년보다 성적이 더 안 나오고 국어는 올라갈 기미가 안 보여?

 

그림도 완전히 사라진다. 그제야 내가 입을 뗀다.

 

- 재수생이 공부를 안 하면 어떤 마음으로 살 것 같아?

 

- 공부하는데 어째 진전이 없냐고?

 

그 이유를 내가 알면 내 마음도 후련할 거다.

 

- 내 최선을 다하고 있어.

 

- 네 최선이 뭔데?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다른 애들보다 월등해야 한다고.

 

엄마 기준에 내 성적이 일치하려면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할까? 나는 그 답을 모른다. 나도 알 수 없는 답을 누군가가 요구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거짓말을 해야 하나. 사실 그대로 나도 모른다고 해야 하나. 내 눈은 갈 곳을 잃어 허공을 떠돌고 내 얼굴에 남아 있던 감정은 순식간에 말라버린다.

 

언젠가부터 주체할 수 없는 졸음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조차도 엄마 말대로 내 정신력이 약해서라고만 생각했다. 버티려고 안간힘을 써도 몰려드는 잠 앞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 이 약해빠진 정신력을 이겨낼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끊임없이 조는 나를 탓하며 안간힘을 썼다. 나는 기면증이라고 진단받았다.

 

줄리아 선생님이 엄마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3학년 1학기 영어 중간고사 성적을 18점을 찍고 가방에 쑤셔 박아둔 시험지를 우연히 보고서야 엄마는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기면증은 정신력이나 심리적인 요인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뇌 속에 있어야 할 하이포크레틴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병이다. 10대에서 30대 사이에 주로 발현된다. 아직 발병의 원인도 완치 방법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이런 말로 타인의 값싼 동정을 바라는 건 아니다. 나는 애초에 소설 속 주인공이 될 수도 없는 너무도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으니까. 대부분 결손 가정에서 자라거나 천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니까. 나는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의 재수생에 불과하다. 나도 안다. 뭐 사실이 그렇다는 거다.

 

나는 기면증에 관한 내용을 줄리아 선생님과 영어 독해로 읽었다. 둘이서 걱정하고 힘겹게 싸워 내던 졸음이 병이었다고 판명이 나고서야 우리는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나는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졸음이 날아갔고 무엇이든 잘 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시적이었지만 영어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고 집중하는 시간이 성적에도 조금 반영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졸리기 시작했고 더 센 약 처방이 필요했다. 더 강한 약을 처방해주기에는 나는 여전히 너무 어렸다. 나는 참았다. 이겨내려 애썼다. 내 정신력 탓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꾸만 탓을 했다. 그래도 나의 노력은 역부족이었고 작년 시험에서 보기 좋게 패배했다.

 

동굴에서 나오면 나는 말이 별로 없다. 반복되는 일과를 마치고 내일을 위해 잔다. 아침 여섯 시 반에 일어나서 대충 아침을 먹고 재수학원으로 이동한다. 시간이 아까워서 머리는 이틀에 한 번 감고 지하철 안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지만 자주 존다. 어깨 위에 씨름 선수가 올라탄 느낌이 든다. 마음도 납덩이를 달아둔 것처럼 무겁다.

 

터덜거리며 학원으로 들어선다. 그때부터 정신없는 일과가 시작된다. 폰은 반납하고 짜인 일정대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한다. 재수학원 일정이 끝나면 바로 미술학원으로 이동한다. 도착하자마자 끊임없이 그림을 그린다. 이따금 친구들을 만나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지만 나는 재수생이라는 걸 각인시킨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공부와 그림으로 촘촘하게 메꿔진다. 이렇게 하는데도 성적이 안 나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역시 장본인인 나일까?

 

밤 열 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할 만큼 낯설다. 창백한 얼굴에 입술은 여기저기 부르터있고 다크서클로 눈은 퀭하다. 감정이 다 증발해버린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갔을까?

 

기면증약 효과가 너덜너덜해져서 눈이 스르르 감긴다. 눈에 힘을 주고 쌍꺼풀을 만들어본다. 서 있는 다리에도 힘을 준다. 그래도 쏟아지는 잠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열 정거장이 지나고서야 내 앞에 앉아있던 배가 불룩한 아저씨가 일어난다. 빈자리가 보이자마자 나는 쓰러지듯 앉아 두꺼운 눈꺼풀로 눈을 덮는다.

 

동굴로 들어간다. 동굴을 만들어 둔 이후 줄곧 같은 길을 걷는다. 길은 어느새 익숙하다. 덕분에 내 발걸음도 빨라진다. 초록색 들판을 연상하며 입구를 스스럼없이 통과한다.

 

기대와는 달리 그곳은 온통 잿빛이다. 바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빛이 물들어 있다. 무표정. 감정이 죄다 말라 버려서 회색빛 돌을 닮은 표정. 그들에게서 현실에서 살아가는 가짜 나를 본다.

 

팻말이 보인다. 5등급 마을. 그 팻말 앞으로 트램이 지나치고 있다. 트램 한쪽 면에 적힌 광고 문구가 보인다. ‘5등급 탈출수기’ ‘당신도 1등급이 될 수 있다.’ 나는 내 앞으로 다가오는 트램에 올라 오른쪽 칸에 앉아서 밖을 내다본다.

 

트램이 서서히 움직인다. 지나치는 공원의 나무는 회색이고 멀리 보이는 바다는 검은색이다. 트램이 광장을 지나 커브 길을 돌 때 길게 늘어선 행렬이 보인다. 거대한 간판에 선명하게 새겨진 글씨는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크다.

 

‘1등급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나는 홀린 듯이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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