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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소설

두 개의 섬

 

바쁜 출근 시간이었다. 오가는 차들이 급정거한 버스를 흘긋 보고 무심히 지나쳐갔다. 어처구니없는 사고에 버스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앳된 얼굴을 한 여자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누워 있었다.

 

딱해서 어째. 아직 젊은데. 세상에, 패딩도 새것 같은데 어떻게 저게 끼여서 죽냐. 운명도 참 지랄 맞네.

 

주변 사람들 말이 들렸다. 정확하게는 그들의 생각이 들렸다.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안타까움과 무심함이 교차했다. 대도시에서 사고는 예고도 없이 언제든 일어나니까. 그저 무기력하게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나도 그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파리한 여자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나다. 내가 죽었다.

 

나의 삶은 에드워드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마치 성형을 한 사람의 얼굴이 전과 후가 너무 달라서 못 알아보는 것처럼 나는 변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외톨이였고 중학교 때는 반항을 일삼았다. 에드워드를 만나기 전에 나는 세상에 태어난 걸 축복이라 느끼지 못했다. 나의 부모는 어린 시절 불장난으로 나를 낳았다. 그들이 겨우 스무 살 때였다. 두 사람은 매일 전투적으로 싸웠다. 송곳 같은 아픈 말이 날아다녔고 나의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짐이었고 환영받지 못했다. 사랑받지 못한 나는 자연스레 내게 주어진 생도 아무렇게나 굴려도 되는 쇠똥구리의 똥처럼 대했다. 두 사람은 내가 열 살 때 이혼했다. 엄마는 자기 삶을 사느라 항상 바빴다. 우리는 모녀지간이라기보다는 함께 사는 룸메이트 같았다. 최소한의 대화를 하지만 매달 책을 한 가득 사다가 내 품에 안겨주는 이상한 관계의 룸메이트.

 

“이게 네 인생을 바꿀 거야.”

“책 따위가 그럴 리가.”

 

중3 때 엄마가 사다 준 책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내가 말했다. 엄마가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삶은 각자가 살아가야 하는 거야. 내가 네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네 아빠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

“그렇군. 각자 살아가야 하면 가족은 왜 만든 건데?”

“화목한 가족을 만들어주지 못한 건 미안해. 그래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엄마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나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나에게 진저리가 나고 있었다. 내 삶이 목적지 없이 망망대해를 떠돌아다니는 한 척의 배 같았다. 외톨이가 싫어서 중학교를 전학하면서 한 무리의 일원이 되었다. 모든 걸 함께 했고 철저히 나만의 시간을 배제했다. 노래방과 카페를 전전하고 하릴없이 수다를 떨며 아이들과 어울려 다녔다. 구석에 처박혀 책만 읽던 외톨이 시절 나는 자주 내가 섬이라고 느꼈다.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 데도 닿을 수 없는 완벽한 고립. 그래서 어울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헷갈렸다. 맹목적인 어울림에서 내가 사라졌고 함께 있어도 외로웠다. 정신적 고립이 왔다.

 

“무얼 하든 네가 원치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 네 삶을 살아, 희수야.”

 

엄마가 한 말이 계속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네 삶을 살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 그때 에드워드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을까. 에드워드는 동네 편의점에서 일했다. 밝고 맑은 아이. 바쁘게 청소를 하고 물건을 진열하면서도 짬이 날 때마다 한쪽에 펼쳐둔 책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주로 영어 소설이었다. 이질적이었지만 동시에 근사했다. 나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영어 원서를 들춰보았다. 낯선 문자는 아득했다. 마치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름처럼 내 삶에 스며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작은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어느 날 도서관 책장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에드워드가 읽고 있는 영어 소설과 같은 표지를 보았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그때부터 나는 지훈이를 에드워드라고 불렀다. 나만 아는 애칭 같은 거였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책을 펼쳤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하늘에는 고운 노을이 깔려있었다. 구멍이 휑하게 뚫려 있던 내 마음에 설렘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나도 신기한 여행을 할 것 같았다. 나의 에드워드와 함께.

 

다음날 편의점에 갔다. 바나나 우유를 사고 책을 두고 그냥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에드워드가 따라 나오며 소리쳤다.

 

“저기요, 책 두고 가셨어요.”

“아, 참, 책!”

“이 소설 좋아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에요. 이제.”

“어, 나도 그런데.”

 

에드워드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산들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기분 좋은 오후였다. 에드워드는 손님이 와서 금방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 날 이후 나는 매일 편의점에 들렀다. 우리는 조금씩 대화를 나누었고 첫 데이트를 했다. 에드워드가 나를 자주 가는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대출하고 도서관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하늘이 청명한 10월의 어느 날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이제 열여덟이 된 우리의 청춘처럼.

 

에드워드의 부모는 에드워드가 아주 어렸을 때 집을 나갔고 외할머니가 에드워드를 키웠다고 했다. 나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는 에드워드의 눈은 진지하고 용감했다.

 

“지훈아, 너는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살아?”

“내 것이니까.”

“뭐가?”

“내 인생.”

 

“그러면 뭐해. 우리 같은 인생의 끝은 뻔하잖아.”

 

“끝은 아무도 모르지. 에드워드가 산산조각이 나서 인형가게에서 다시 붙여지잖아. 옆에 있던 인형이 했던 말 생각나? ‘누군가가 너에게 올 거야. 너를 데려갈 거야. 그 전에 네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 나는 그냥 마음의 빗장을 걸지 않고 연 거야. 삶은 어차피 누구나 힘든 거니까.”

 

나를 바라보는 에드워드의 얼굴이 빛났다. 에드워드와 맞이할 미지의 날들이 기대되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산다는 건 의미가 없어. 그 인형의 말처럼. 내 삶도 그런 것 같아. 내가 내 삶을 받아들이고 사랑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지.”

 

“그러면 내 삶은 이제 의미가 있네.”

 

내가 한 말에 에드워드는 두 손을 얼굴에 대고 놀라는 척을 하며 말했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야?”

“헐. 갑자기 너무 쑥 들어오는 거 아니야? 내가 내 삶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거지.”

 

에드워드가 씩 웃으며 긍정의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다!”

 

에드워드가 장례식장에 와서 내 사진을 보며 울음을 토해낸다. 묵묵히 있는 엄마보다 그리고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던 낯선 남자의 모습을 한 아빠보다 더 운다. 온몸을 들썩이며 운다. 내 삶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며 살기 시작했는데. 나는 이제 겨우 스무 살인데. 내년에 에드워드와 세상의 중심에 서 보자고 약속했는데. 우리에게 더 많은 날이 허락되어야 하는데. 왜 나야? 나 아직은 더 살고 싶어. 내 마음이 운다. 설렘과 꿈으로 채워가던 마음의 구멍이 다시 서서히 뚫린다. 점점 더 커진다.

 

에드워드가 몇 날 며칠을 먹지도 않고 누워만 있다. 아르바이트도 안 가고 할머니가 쑤어준 죽도 밀치면서 멍한 눈으로 자꾸만 운다. 에드워드, 나의 에드워드, 그러면 안 돼. 마음의 문을 열어, 세상을 향해, 너의 삶을 향해. 나는 에드워드 주변을 맴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보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아직은 떠날 마음이 없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날 에드워드가 나를 찾아왔다. 한 줌의 재가 되어 항아리에 갇혀있는 나를 보러.

 

‘희수야, 내 삶에 와줘서 고마워.’

 

한 달 후 에드워드가 비행기를 탄다. 예정보다 6개월이나 빨리. 호주에 있는 울루루에 갈 것이다. 세상의 중심이라는 그곳에서 나 대신 울루루를 볼 것이다. 떠나지 못하고 떠돌던 내가 햇살에 부서진다. 강렬한 빛이 나의 몸을 통과하고 잔잔한 물결처럼 내가 스르르 사그라든다.

 

에드워드를 만나기 전 나는 섬이었다. 철저히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된 무인도였다. 나를 찾는 이도 없었고 다른 섬에 닿을 수 있는 다리도 보트도 없었다. 에드워드는 내 옆에 나란히 있는 또 다른 섬이 되어주었다. 에드워드가 말했다. “No man is an island.” 누구도 섬이 아니라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함께 살아가는 거라고.

 

두 개의 섬이 있다. 두 개의 섬에 다리가 놓였고 연결되었다. 섬이 아닌 우리가 되었다. 나는 에드워드를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았다. 남겨두고 가는 생에 미련 없이 떠난다. 나는 더는 섬이 아니므로. 나의 에드워드를 만나 나의 삶은 의미 있었으므로. 나의 에드워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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