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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스콘 굽는 토끼

 

“토끼다!”

내 뒤에서 걸어오고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나를 지나쳐갔다.

‘그럼 뭐 산속에 토끼가 있지 어디에 있어. 잠깐만, 뭐? 토끼? 진짜 토끼?’

나도 아이들이 달음질쳐 간 곳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꺼내서 토끼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마다 귀엽다며 떠들썩했다. 하얀 토끼 한 마리가 궁둥이를 쭉 내밀고 땅에 배를 대고 찰싹 달라붙어서 누워있었다.

‘헐, 저게 토끼야? 뚱뚱해서 하얀 곰 같아.’

‘요즘 스콘을 많이 먹었더니 살이 쪄서 그래.’

‘헐, 뭐야? 토끼가 말도 해?’

나는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했다. 내 귀에만 들리는 건지 알고 싶었다.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조금 멀찍이 서서 토끼를 보며 야단법석이었다. 그중 나와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여자아이가 착해 보였다. 나는 최대한 표 나지 않게 그쪽으로 갔다. 게가 걷듯이 옆걸음으로 천천히.

“저기... 너도 들었어?”

“뭘?”

“저 토끼가 스콘을 먹고 저렇게 살이 쪘대. 참 어이없지?”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토끼가 스콘을? 네 말이 더 어이없어! 토끼는 풀을 먹는다고, 스콘이 아니라.”

사람은 보이는 것과 실제 성격은 또 다른가 보다. 그 여자아이는 함께 있던 무리에게 뭐라고 속닥였다. 순간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리고 나를 흘끗흘끗 보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뭐, 대수롭지 않다. 아이들은 내가 하는 말이나 입고 있는 옷을 보고 늘 놀리니까. 그냥 나는 나일뿐인데 아이들은 나를 찐따라 부른다.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내가 미친 게 틀림없어.’

‘그럼 네 생각이 들리는 나도 미친 건데 난 완전 정상이라고. 그니까 너도야.’

‘헐, 뭐지? 또 들렸어.’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숨이 가빴다.

‘오늘은 내가 피곤하니까 휴식이 필요해. 내일 널 초대할게. 내일도 이 길을 통해 집에 가지?’

나는 이 기막힌 상황에 말이 안 나왔다. 그래도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토끼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내일 만나. 아주 맛난 스콘을 구워줄게. 오늘은 엄청 실패했으니까 내일은 자신 있어.’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머뭇거리다 돌아섰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집으로 가는 내내 고개를 여러 번 가로저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안 그러면 찐따에서 왕따가 될지도 몰라.’

한참을 걸었다.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빌라가 보였다. 나는 아이들을 피해 늘 숲길을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나를 초대해주다니. 그건 참 좋다.’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했다. 숲길로 갈 것인지. 도로 옆에 난 길로 갈 것인지.

‘나는 제정신이야. 세상에 말하는 토끼는 없어!’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고 도로 옆길로 걸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한참을 걸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뒤돌아서서 숲길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호기심으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 반 아이들은 나의 별난 호기심을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나니까. 이번에도 놀리면 받으면 되지 뭐.

어제 토끼를 만난 장소에 와 보니 토끼가 없었다.

‘역시나 또 내가 상상한 건가?’

흥분으로 들썩이던 어깨가 축 처졌다. 발길을 돌려 가려는데 토끼가 산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있었다.

“어서 와, 늦었네. 기다리고 있었어. 이쪽이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응. 내가 초대한 손님이잖아.”

통통하게 살이 오른 토끼는 깡충깡충 계단을 뛰어올랐다. 나는 토끼를 따라가느라 발걸음이 바빴다. 헉헉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오르는 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 맨 위에 엄청나게 큰 바위가 두 개 있었다. 불룩한 배를 하고도 토끼는 유연하게 그 사이로 쑥 빠져나갔다. 나는 몸을 옆으로 해서 겨우 빠져나갔다.

눈앞에 너른 황금벌판이 펼쳐졌다. 한쪽 길에는 코스모스가 살랑대는 바람을 느끼며 하늘거렸다. 거인을 닮은 무지막지한 느티나무 한그루와 초록색 지붕에 빨간 대문을 단 조그마한 집이 나란히 서 있었다. 책에서 읽었던 어느 시골의 가을 풍경 같았다.

‘우와 아름답다. 매일 수많은 빌라만 보는데.’

토끼가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아담했다. 토끼는 오자마자 꽃무늬가 수 놓인 앞치마를 입고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어서 와. 네가 우리 집에 온 최초의 손님이야.”

토끼가 의자를 빼주며 웃었다. 웃느라 다 감겨버린 긴 두 눈이 웃겨서 후훗 웃음이 났다.

“너도 친구가 없어?”

“그런 셈이지. 다들 떠났거든. 원래 나이가 들면 그래. 각자 살아야 하는 삶을 사느라 헤어지게 되어있어.”

“너도 외롭겠다. 나처럼.”

“이따금. 그래서 스콘을 굽기 시작했어. 굽다 보니까 행복하더라고. 이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스콘을 굽고 싶어. 꿈이 있으니까 외롭지 않아.”

“그게 네 꿈이야? 꿈이 뭐 그리 소박해?”

“그러는 네 꿈은 뭔데?”

나는 꿈이 없다. 망설였다. 오랜만에 생긴 친구인데 내가 멋진 애라는 걸 알려줘야 했다.

“음.... 내 꿈은…. 유튜버야.”

“그래? 영상에 담아서 나누고 싶은 게 뭔데?”

“그게... 나도 몰라.”

“너도 모르는데 그게 꿈이야?”

“왜냐면 인기가 많잖아. 사람들이 주목하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글쎄... 책 읽고 상상하는 거... 이번 생은 완전 큰일 났어. 난 공부도 못하고 인기도 없고 예쁘지도 않으니까.....”

“몇 살인데?”

“열세 살.”

“아직 이번 생은 안 큰일 났어.”

“사실은... 나 꿈이 없어.”

“너 상상하는 걸 글로 써 보는 건 어때?”

“치,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 같은 애가...”

“그것도 중요하지 않아. 네가 글을 쓸 때 행복하면 그게 제일 중요해.

“근데 그런 것도 꿈이야? 꿈은 남들이 다 와하는 거창한 거여야 하지 않을까?”

“그 역시 중요하지 않아. 네 가슴이 뛰는지가 제일 중요해.”

“가슴이 뛴다... 근데 심장은 매일 뛰잖아. 안 그러면 죽으니까.”

이야기해 놓고 내가 키득거렸다. 재미있는 농담을 한 것 같았다. 애들은 싫어하지만. 토끼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근데, 왜 스콘이야?”

“사실은 나 애완 토끼였거든. 우리 주인은 나를 사놓고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어. 나를 돌보지도 않았고. 같이 살던 친구가 지극 정성으로 나를 돌봐주었어. 자기가 자주 가는 카페에 일하는 남자가 스콘을 굽고 커피를 만들었거든. 그 남자를 좋아했어. 그래서 일요일마다 스콘을 구웠어. 그 남자에게 주려고. 스콘을 반죽하고 구울 때 그녀의 얼굴을 보면 행복이 저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스콘을 구우면서 나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던 그녀의 모습을 네가 봤더라면 나처럼 사랑하지 않고 못 배겼을 거야. 내가 8살 때 병이 들었는데 우리 주인이 어느 날 밤에 나를 숲에 버렸어. 다행히 자연으로 돌아온 나는 살아서 이제 10살이야. 스콘을 구우면서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던 그녀가 그리웠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리고 스콘 생각이 났지. 그때부터 줄곧 스콘을 굽고 있어. 그때의 냄새, 맛, 그녀의 행복한 얼굴을 내가 다시 만들어 보고 싶어.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지만....”

“너희 주인 정말 나쁘다!”

나는 화가 나서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말했다.

“근데 토끼는 몇 살까지 사는데?”

“야생 토끼는 10살에서 12살. 시간이 더 허락되면 좋겠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랑 마주 보며 이야기하던 토끼가 사라진다면 어떤 감정이 들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토끼 말을 들어주었다.

조용해진 나를 보고 명랑한 목소리로 토끼가 말했다.

“이제 스콘이 다 구워진 것 같아.”

토끼가 잘 구워진 스콘을 두 개 내왔다. 나에게는 우유를 따라 주고 토끼는 홍차를 타서 탁자에 앉았다.

“어서 먹어봐.”

“응.”

내가 스콘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촉촉하면서도 풍부한 맛이 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순간 정말 행복했다.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내 눈도 토끼 눈처럼 웃느라 감겨버렸다.

“정말 맛있어. 내가 먹어 본 스콘 중에 최고야.”

토끼가 내 얼굴을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왜 울어?”

“그냥 행복해서.”

“근데 나 사실 스콘을 처음 먹어봐.”

“그러면 비교 대상이 없는 건데.”

“그래도 네 스콘이 이 세상에서 최고야!”

우리 둘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 내일도 와도 돼?”

“너 글 하나 쓰면 와. 나 읽어 보고 싶어.”

“그래. 그럼 우리 오늘부터 친구 하는 거다.”

“우리 친구 아니었어?”

웃느라 토끼의 두 눈이 감겼다. 나도 따라 웃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내 가슴속으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나비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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